미술: 뜻밖에 드러나는 오래된 그림들

존 캐너데이, 뉴욕 타임즈, 1971년 11월

아트딜러들에게 있어 오래된 대작을 찾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영국을 여행하면서 그러한 대작을 찾아내는데 능한 한 화상은 이번주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저는 렘브란트나 앵그르 같은 새로운 작품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작품들을 전시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단골 손님들에게나 전화하려구요.”

따라서 슬랫킨 갤러리(Slatkin Galleries)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여간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다. 퐁탠블로 학파(Fontainebleau)부터 마티스(Matisse)까지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는 이전의 전시들(a Gabriel de Saint Aubin, a Piranesi)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 몇몇 있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작품들 중에는 앙그르(Ingres)의 초상화, 도메니코 티에폴로(Domenico Tiepolo)의 푼치넬로(Punchinello. 영어로 Punch. 이탈리아 희곡 dell’arte의 매부리코에 곱추인 남자 주인공) 시리즈 몇 점 그리고 바우처(Boucher. 프랑스의 화가)의 작품 여섯 개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바우처의 작품들  중에는 그가 단지 [겉으로만] 아름답게 꾸며내는 데 능하다는 비방적인 평판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남성 누드 연구작 한 쌍도 있다.

 이 전시는 훌륭한 회화전이지만, 만약 갤러리에 다른 것이 없었더라도 아래 층(여덟 번째 층)에 있는 사울 스타인버그(Saul Steinberg)의 태피스트리 때문에 방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직조공의 정의에 따라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태피스트리가 아니라 벽에 걸려 있는 7×9 피트짜리의 깔개다. [그러나] 사실상 직조로의 변형을 위해 현대 작가들이 의도한 다른 디자인들과는 달리, 이 깔개는 이미 장인적인 기술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그 깔개는 거기에 수놓여진 오달리스크, 스핑크스, 스타인버그의 고양이, 깔개 속의 깔개와 회화적인 농담 그리고 미학적인 상호 참조와 더불어 아름답고 재미있으면서도 약간은 터무니 없고 또 완전히 숙달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타인버그의 작품들 중 하나인 그 깔개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가 동세대 미국 작가들 사이에서 챔피언으로 판명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전시회 중에서도, 웨스트베스(Westbeth)의 갤러리들에서는 웨스트스트리트(West Street) 463번지의 예술가 커뮤니티 8명의 개인전이 열린다. 관람 시간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이다. 인정 가능한 이유로  “모나드( Monad.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단자(單子),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는 형이상학의 기본적인 성분)”라고 불리는 이 그룹은 과테말라, 한국, 일본에서 태어나거나 중국-미국계, 이탈리아-미국계 그리고 스페-미국계를 포함한 다양한 내력을 가진 가진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그들이 표방하는 것처럼, 사실상 그들이 서양의 현대적인 스타일과 함께 “동양 예술에 내재된 역동적이고 성찰적인 특성”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어떤 추상화 작가들의 그룹보다도 훨씬 더 통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전시에는 반 아마추어적인 노력과 완전히 전문가적인 성취가 섞여있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다.

항상 안전한 철자(알파벳) 순서대로 그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로돌포 아뷸라라크(Rodolfo Abularach)는 다소 특징적이게 인간의 눈을 양궁 표적의 크기로 확대시키며 눈과 같은 다른 해부학적인 부분에서 다른 패턴들을 파생시킨다. 이들은 처음에는 다소 진부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나, 다시 보았을 때 작품 속의 그라데이션이 단번에 수천개의 줄이 서예적인 생동감을 가진 체계적인 문양으로 생생하게 나타나게 되면서 매혹적인 것이 된다.

안동국(Dongkuk Ahn). 또 다른 진정한 전문가인 그는 동양적인 화풍과 예상 가능한 현대적인 매너리즘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면서 4대 요소를 그려낸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모나드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순전히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시적인 표현으로 그는 이번 전시의 정상에 올랐으며 더욱 큰 전시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요시시게 후루카와(Yoshishige Furukawa)는 마르카렐리(Marca Relli)의 콜라주를 자세히 살펴보고 거친 천에 구멍을 뚫는 자신만의 효과적인 기법를 통해  그 천과 깔끔한 구멍들이 생동감 있는 검은 점으로 나타나게 한다. 한 콜라주에서는 방수포의 작은 구멍들이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는 이러한 기교를 매우 잘 부리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는 구불거리는 천에다가 한 실험작과 같은 실패작들도 몇 개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한 가격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줄무늬 모양의 기하학적인 교차점으로 구성된 비토 지아칼론(Vito Giacolone)의 그림들은 더 나은 것을 위한 섬세한 습작들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러나] 그의 보편적인 배경이 캔버스에 적용된 것인 은색 페인트는 효과적이지 못 했다. 그것은 대체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판넬들은 금속 위에 구운 에나멜로 칠해진다면 멋질 것이다.

전시와 연구비 그리고 콜렉터들의 구입에 관한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미노루 카와바타(Minoru Kawabata)는 나의 좋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그의 작품이 내게는 전적으로 우유부단하고 상상력이 결여되있으며 비전문가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내 잘못일 것이다.

마이클 폰스 드 레옹(Michael Ponce de Leon)은 판화에 다른 매체를 결합하는 실험에 있어 유명한 선구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이 그의 작품에 대한 나의 반대 이유이다. 그의 작업은 결국 너무 많은 재료들로 인하여 해쉬(고기와 감자를 잘게 다져서 섞은 요리)처럼 된다. 어느 누군가는 – 적어도 나라도 – 그가 쑤셔넣어질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넘쳐나는 그의 판화에서 무언가 어떤 것이라도 빼내는 방법을 배우기를 계속 바라고 있다.

제이콥 라비노위츠(Jacob Rabinowitz)의 판금 조각들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또는 만졌을 때 너울거리도록 균형을 이루고 있다. 모양들은 다소 오색했고, 실내에서 만졌을 때 만들어지는 움직임은 흔들의자의 움직임보다도 흥미롭지 못했다.

멀스 캐닝햄(Merce Cunningham)과 함께 무용을 했던 멜 웡(Mel Wong)은 시각 예술과 춤에 관련된 실험으로 연구비를 받았다. 나는 그들이 그가 여기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보다 더 성공하기를 바란다. 독립적인 예술로써, 그의 작업은 구원받지 못할 정도로 모방적이고 아마추어적이다.